전북특별자치도 임실군 운암면 입석리 강궁절 '충장공양대박장군운암승전비'는 임진왜란 당시 임실군 운암면 전투에서 천명의 의병을 이끌고 만여명의 왜군을 섬멸한 충장공 양대박 장군의 승전을 기념하기 위한 승전비이다.
이곳 운암면은 임진왜란 때 호남에서는 첫 승리를 거둔 곳이다.
이 비는 원래 임실군 운암면 伐亭마을(임진왜란 당시 승전지)에 있었으나 일제에 의해 파손되고 또한 1965년 섬진댐이 완공되어 수몰지역으로 마을과 당시 전승지가 수장되자, 반세기만에 수장되어 가는 역사의 사실을 복원하여 후세에 전하고 임실이 충효의 고장임을 재조명하고자 향토회가 주선하고 임실군이 지원하여 2006년 8월 15일 여기에 다시 세운 것이다.
남원 출신의 양대박장군은 1592년 임진왜란이 발발하자 사재를 털어 의병을 모아 6월 25일(음)운암전투에서 만여명의 왜병과 싸워 1,200여명에 달하는 왜군을 섬멸하였고 동년 7월 7일 진중에서 숨을 거두었다. 사후 대제학과 병조판서의 벼슬을 받고 시호를 충장공이라 하였다.
양대박장군의 묘는 남원시 화정동 한우물마을 선산에 자리하고 있고, 주생면 상동리에는 남원 양대박 부자충의문이 있다. 충장공 양대박과 그의 아들을 추모하여 1796년에 세운 정려로 2000년 11월 17일 전라북도 문화재자료 제170호로 지정됐다. 또한, 전남 곡성군 청계동계곡에는 '청계동과 양대박장군 유래비'가 세워져 있는데 아래와 같이 소개하고 있다.
양대박 장군은 호(號)를 청계 (靑溪)라 하며, 조선중종 38년 (1543)년 전 전북 남원군 주생면 상동리에서 태어나 우계 성혼을 스승으로 도학을 터득하여 일찍부터 그 이름이 널리 알려지셨습니다.
임진왜란이 일어나기 십이년 전에 청계동에 청계정사와 내외사, 보허정, 동정2동, 서성2동 남정과 북정 3동을 짓고 당시 박사암, 정송강 등 제현과 교분을 두텁게 지내며 국난을 예견하고 계책을 강구하셧습니다.
1592년 인진왜란이 일어나자 재산을 모아 의병 4,000여명을 모집하여 총,칼,투구와 갑옷 등을 이곳에서 제작하고 노적봉을 만둘어 백회 수백포대를 섬진강에 풀어 곡성지역에 대군이 주둔하고 있는 것처럼 위장전술을 폈으며, 제봉 고경명 장군, 이종제인 월파 유행노장군 등 과 담양 추성관에서 혈맹을 맷고 돌아와 임진년 6월 25일 아둘 형우와 함께 임실 운암 전투에서 일본군 수괴 대남비 왜병 만여명과 싸워 1,200여명에 달하는 왜군을 섬멸하고 전사하셨는데, 이 전투가 의병으로는 호남의 첫 전투입니다.
사후에 대제학과 병조판서의 벼슬을 받고 시호를 충장공이라 하였으며 남원시 주생면 상동리에 부자중의 지문이라는 정려각를 세워 모시고 있습니다. 청게동과 계곡은 크게 율사골, 사수골, 묵방골 계곡으로 나누어져 있으며, 그 중 가장 큰계곡인 사주골을 가리켜서 통상 청계동계곡이라 합니다.
청계동과 양대박장군 유래비
전승비는 한국의 아름다운 길로 선정된 옥정호 벚꽃길 내에 정자와 전승지 화장실이 갖추어진 주차장 한쪽에 자리잡고 있다. 전승비 뒤로는 국사봉 제1전망대와 국사봉 제2전망대로 이어지는 산책로 수변데크로드가 조성되어 있다.
이곳은 옥정호 드라이브길 중에 대형 주차장이 있는 곳으로 많은 사람들이 이용을 하고 있는데 산책로를 이용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승전비에는 아무런 관심 없이 지나쳐 버린다. 아래 붕어섬 안내판처럼 승전비 앞에 안내판이라도 하나 세워 놓으면 좋을것 같다.
'현충시설·전적비·전적지' 카테고리의 다른 글
국군 제3연대창설 · 625한국전참전기념비 (1) | 2024.06.06 |
---|---|
화천 '425고지전적비' (0) | 2024.05.31 |
김제 월남참전기념비 국가보훈부지정 현충시설 51-2-2 (0) | 2024.04.05 |
논산시참전공적비 국가보훈부지정 현충시설 20-2-8 (0) | 2024.04.05 |
다부동전적기념관에 백선엽 동상 이어 이승만·트루먼 동상 제막 (0) | 2023.08.09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