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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충시설·전적비·전적지

호국사찰 포항 용화사

by bsuperman 2024. 11.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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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항 학도의용군 625전적비 - 포항시 충혼탑 - 전몰학도 충혼탑 - 학도의용군 전승기념관 - 기계·안강지구 전투전적비로 이어지는 학도의용군 호국문화의 길을 탐방하며 마지막으로 호국사찰 포항 용화사에 들렸다.

용화사는 기계·안강지구 전투에서 전사한 고 권태흥 대위(육사9기, 경북상주) 의 배우자 한연호 여사가 참전용사들의 넋을 추모하기 위해 남편이 전사한 장소에 1965년 건립한 사찰로 이후 이곳에 위령탑을 세웠다. 용화사 위령비는 2022년 12월 국가보훈부 현충시설로 지정됐다.

포항 용화사 전경
용화사 위령탑

여기 한 덩이 돌에 피보다 더 진한 이 민족의 한을 새기나니 영령들이시여 불멸의 구국용사되어 고이 잠드소서.

蓮花國에 還生하소서
학도병! 대한민국의 이름으로 영원히 기억하겠습니다.
용화사 대웅전 좌측에는 故 권태흥 대위와 한연호 여사 공덕비가 세워져 있다.
故 권태흥 대위와 한연호 여사 공덕비
용화사 창건주 공덕비문 내용

묘성당 법원사 불성의 근원을 깨달아 생사가 없는 본원으로 돌아가 무위진인의 정상에 올라 성법불이의 세계를 이룬 분이 법연스님이다. 스님의 휘는 법연이요, 속명은 한연호이다.

1926년 4월 21 일생, 서울시 종로구 인사동에서 아버지 청주한공 병수와 어머니 전주이씨 사이에 막내로 태어나니, 천성은 천명하고 영민하며 용모가 단정하여 이웃들로 부터 칭찬이 자자하였다고 하더라. 가연한 규수가 되니 혼기가 차매 20세에 육사 9기생 출신 권태흥 소위와 성혼하니 슬하에 두 형제를 두어 행복한 군인가족생활이었다.

1950년 6·25 비학산전투에서 8월 23일에 전사하였다는 비보를 받으니 청천벽력이요, 하늘이 무너지고 땅이 꺼지니 눈앞이 캄캄하고 앞날이 아득한지라 저 어린 두 형제를 누가 있어 키우고 교육시킬꼬, 죽지 못해 정신차려 전사한 곳 전적지를 천신만고 끝에 찾으니 아! 장하도다. 충혼이여, 국가를 위하여 적과 싸우시다가 장열하게 산화한 부군이여, 청춘이 아깝도다. 애석하고 애석하도다! 불러도 불러도 대답없으니 구곡간장 다 녹는구나. 처자권속 남겨둔 채 어찌 눈감았을까. 원통하고 애닮도다. 오호 통재, 오호 애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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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곳에 초암지어 부처님 뫼시고 권대위 호국충혼의 위령비 세워 극락왕생 명복 빌어 두 아들 잘 키워 세월볼라 바랬더니 장남마저 월남전 파병하여 종신불구상에 제대하니 이 무슨 가구한 운명인고, 하늘도 무심하고 천신도 가혹해라. 인생이 무상이라 이를 두고 하는말인가? 속세인연 끊고 삭발하여 스님되어 6·25 전란당시 기계, 안강, 신광, 죽장, 포항전투에서 장렬하게 전몰한 장졸군속 호국영혼 위령탑 세워 년년세세 현충일에 위령제를 뫼시고 지극정성 기도하니 스님 연세 팔십에서 구십줄에 드시니 용두산이 높아 오르내리기도 힘들고 골깊어 산 우거지니 찾는 이 적어 적적할 때도 많더라.

가을 달 밝은 밤에 독경소리 처량할 때도 많더라. 긴 겨울 찬바람 춥고, 쓸쓸하니 누가 있어 알꼬. 아 〜 인생이여, 스님께서 하시는 말씀 부처님 경문에 제법무상, 제법무아, 제법실상 말씀 깊이 깨치니〜 나무아미타불

◐ 2007년 비문 작성 당시 유발상좌 (머리를 깍지않은 속가제자) 정수롤 두었다 하시니 현 주지 정수스님이며 스님은 2017년 1월 7일 (현 주지 정수스님 생일날) 세수 92세에 입적하시니 입적하시니 스님의 유해는 ‘죽어도 살아도 용화사를 떠나보내지 말라’는 유언에 따라 화장하여 공덕비 뒤 부도탑에 모셨다. 2018년 1 월 7일 정수합장

용화사에서는 매년 전사한 참전용사들을 기리는 위령제를 개최하고 있으며 지난 6일 현충일에도 당시 기계전투 참전 학도병 류병순 님 등 1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제29회 위령제를 봉행했다고 한다. 폭염특보가 발령중이었던 7월 28일 오후 용화사에 다녀왔는데 주지스님께서 시원한 차까지 내주시며 용화사에 대해 자세한 설명을 해주셨는데 이 자리를 빌어 감사드린다.

 

포스팅을 하기 전에 관련 기사를 검색을 해보았는데 호국사찰 용화사에 대한 자치단체의 관리가 부실해 역사적 의미를 훼손하고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는 기사가 있었다. 좁은 진입도로와 홍보 부족 등으로 용화사를 찾는 시민은 극히 드물다는 것이었다.

 

용화사로 진입하는 도로는 폭이 약 2.1m에 불과해 차량들의 교차 통행이거의 불가능했고, 일부 구간은 비포장으로 우천시 진입에 어려움이 많아 도로 확포장 공사가 시급한 상황이었다. 현충시설 안내문과 이정표도 볼 수 없었다.

 

용화사는 순국선열의 고귀한 뜻이 새겨진 사찰로 역사교육의 현장 및 체험의 장소인 현충시설을 시민들이 보다 친숙하게 접하고 즐겨 찾을 수 있도록 도로 확장과 위령비 주변 정비를 위해 기관의 도움이 절실한 것 같다. 지역 시의원을 비롯한 정치인들의 관심으로 개선되기를 희망한다.

 

용화사는 그 어느 대규모의 웅장한 현충시설보다 순국선열의 고귀한 뜻을 더욱 깊이 새겨 볼 수 있는 곳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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