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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충시설·전적비·전적지

해군첩보부대(UDU) 충혼탑 · 해군 제2함대사령부 주둔 기념비

by bsuperman 2023. 2.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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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군첩보부대(UDU) 충혼탑

월미공원에는 2011년 예비역 대한민국 특수임무수행자 동지들이 뜻을 모아 건립한 해군첩보부대(UDU) 충혼탑이 있다. 1948년 6월 10일 창설된 해군첩보부대는 수백회의 대북 비밀공작을 수행한 부대로 특히 1950년 감행된 인천상륙작전에 앞서 영흥도 탈환, 팔미도 등대 확보 공작을 성공시킴으로써 인천상륙작전에 큰 공을 세웠다.

반세기 동안 이곳 월미도에 주둔했던 해군 첩보부대의 위령탑에는 맥아더사령관의 어록 중 해군첩보부대와 관련된 글이 새겨져 있다. 

"본인은 대한민국 해군의 우수성을 새롭게 인식하고 있습니다. 특히 대한민국 해군첩보부대의 활약은 훌륭했습니다. 그 첩보들은 나의 상륙작전 결심을 더욱 확고히 해주었습니다. 나는 대한민국 해군첩보부대원들에게 미국의 은성훈장을 상신했습니다." 1950년 9월 17일

해군 제2함대사령부 주둔 기념비

해군 제2함대사령부 주둔 기념비는 1999년 11월 제2함대사령부가 평택으로 옮겨 가기까지 53여 년 동안 주둔했던 이곳에 부대 주둔 역사를 기념하기 위하여 건립한 것이다.  

해군 제2함대사령부 주둔기념비

주둔 기념 표지석에는 어래와 같이 새겨져 있다.

월미도는 해군 역사에서 잊혀질 수없는 한 현장이다. 월미도는 한국전쟁 후 처음으로 다수의 북한 해군 정규군과 겨뤄 승전한 '연평해전'의 주역 제2함대사령부가 반세기 동안 주둔했던 곳일 뿐만 아니라, 세계 전쟁사에서 높이 평가받고 있는 인천상륙작전 당시 연합군 주력부대가 상륙했던 곳이기도 하다.

1946년 4월 15일 이곳에서 발족한 인천기지는   불과 수 척의 상륙용 주정으로 연안 경비를 맡다가 1949년 6월 인천경비부로 개편되었다. 1950년 한국전쟁때에는 아군의 전세 악화로 군산을 거쳐 목포로 주둔지를 옮겨 목포경비부로 통합되었다가, 인천상륙작전의 성공으로 전선이 북상하면서 3개월 후 다시 이 자리로 복귀하였다. 1953년 7월 정전과 더불어 인천경비부는 조직을 재정비하여 수도권 서측 해상방위를 맡았으며, 1973년 7월 제5해역사령부로, 1986년 2월 제2함대사령부로 각각 증강·개편되었다.

1999년 11월 제2함대사령부가 지금의 평택으로 옮겨 가기까지 월미도와 함께 한 세월은 53여 년이었으며, 해군 역사가 살아 숨쉬던 한 터전이자 제2함대와 동고동락했던 해군 장병들의  마음의 고향인 이곳에 부대 주둔 역사를 기념하기 위하여 이 조형물을 남긴다.  2004년 10월 5일 해군참모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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