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 한국전쟁 초기에 회생의 격전지였던 포항전투에서 육군 3사단 22연대 1대대 소속 분대장 연제근은 1950년 9월 17일 형산강도하작전의 가장 위협적 장애물인 적의 기관총 진지를 격파하기 위해 13명의 특동대를 결정하였다. 수류탄을 몸에 달고 헤엄으로 형산강을 건너눈 중 9명은 적탄에 쓰러졌으나 어깨 관통상을 입은 연제근 상사와 대원 3명이 기어이 육탄 산화로 임무를 완수함에 포항 수복의 길이 더 순탄이 열리고, 마침내 여기서 북진의 발판이 마련되었다.
역사의 숱한 애환을 품어 유구히 흐르는 형산강은 늘 그날의 특공대원들을 잊지 않으려니 비록 늦었지만 그들의 순국 60주년을 맞은 2010년 9월 17일 52만 포항시민이 그 푸른 넋들을 모시고 멸사봉공 정신을 기리기 위하여 삼가 이 조상(彫像)을 세웠다.
고(故) 연제근(1930~1950) 상사는 1930년 증평군 도안면 노암리에서 태어났고 도안초등학교를 졸업했다.
1948년 국방경비대에 자원입대했고, 이듬해 공비토벌작전에 참가해 공비 9명을 일망타진하는 공을 세웠고 그의 무훈은 1950년 발발한 6.25 전쟁에서 더 빛났다.
북한군의 기습 남침으로 수세에 몰린 국군은 경북 포항시 남쪽을 흐르는 형산강을 반드시 확보해야 했다. 육군 3사단 22연대 1대대 분대장이었던 연 상사는 수류탄 10여 발을 탄띠와 멜빵에 넣고는 돌격대원 12명을 이끌고 적진으로 침투했다. 빗발같은 총알이 어깨를 관통했는데도 적 기관총 진지를 파괴한 후 장렬히 전사했다. 당시 그의 나이 스무 살이었다. 이 작전에 성공한 국군은 북진의 교두보를 구축하고 서울 탈환의 발판을 마련했다. 정부는 연 상사의 공적을 기려 2계급 특진과 함께 을지·화랑무공훈장과 무공포장을 추서했다.
2001년 8월에는 주민들이 연제근 상사의 모교인 도안초등학교 정문 앞에 흉상을 세웠고, 2015년에는 도안면 화성리에 그의 이름을 붙인 연제근공원이 조성됐다. 연제근 상사 흉상은 2003년 국가보훈부 현충시설로 지정됐다.
연제근상사의 소속부대인 육군 제 3사단 22연대에도 제 59주년 국군의 날 기념행사의 일환으로 호국영웅 고 연제근상사의 흉상이 세워졌다. 연제근 상사는 지난 2000년 6.25전쟁영웅으로, 2003년 이달의 호국인물을 선정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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