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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충시설·전적비·전적지62

포항 학도의용군 625전적비 · 포항여중전투 학도의용군 명비 6.25전쟁 중 학도병들의 활약을 취재하기 위해 2016년 6월 장사상륙작전이 감행되었던 영덕군 남정리 장사리 해안에 있는장사상륙작전 전몰용사 위령탑과 포항 학도의용군전승기념관, 전몰학도충혼탑을 차례로 방문했다  이후 부산유엔공원과 거제도 포로수용소로 이어지는 일정때문에 시간이 다소 아쉬웠지만 학도의용군을 대표하는 전투였던 포항여중전투가 있었던 자리에 1977년 세워진 학도의용군 625전적비를 그냥 지나칠 수는 없었다. 당시에는 포항여고 정문 앞에 약 600㎡(약 180평) 면적의 소공원 조성을 막 시작한 때였는데 언젠가 다시 한번 온다고 했던 것이 8년만에 이 곳을 다시 방문했다..조국이 위기에 처했을때 국내외 학생들은 펜대신 총검을 잡고 오직 구국의 일념으로 자진 참전했다. 꽃다운 나이로 7,000여.. 2024. 7. 29.
포항 현충시설 호국사찰 용화사 위령탑 포항 학도의용군 625전적비 - 포항시 충혼탑 - 전몰학도 충혼탑 - 학도의용군 전승기념관 - 기계·안강지구 전투전적비로 이어지는 학도의용군 호국문화의 길을 탐방하며 마지막으로 호국사찰 포항 용화사에 들렸다.용화사는 기계·안강지구 전투에서 전사한 고 권태흥 대위(육사9기, 경북상주) 의 배우자 한연호 여사가 참전용사들의 넋을 추모하기 위해 남편이 전사한 장소에 1965년 건립한 사찰로 이후 이곳에 위령탑을 세웠다. 용화사 위령비는 2022년 12월 국가보훈부 현충시설로 지정됐다. 여기 한 덩이 돌에 피보다 더 진한 이 민족의 한을 새기나니 영령들이시여 불멸의 구국용사되어 고이 잠드소서.학도병! 대한민국의 이름으로 영원히 기억하겠습니다..묘성당 법원사 불성의 근원을 깨달아 생사가 없는 본원으로 돌아가 무위.. 2024. 7. 29.
6.25전쟁 격전지 기계·안강지구 전투 전적비 기계·안강지구 전투 전적비는 1950년 8월 9일~9월 22일까지 약 45일 동안  6.25전쟁 격전지 기계·안강지구 전투에서 조국을 지키다 산화한 1500여명의 젊은이들의 고귀한 희생정신을 기리기 위해 포항시가 2016년 12월 14일 기계면 성계리 기계·안강지구 전투 전적비 공원에 제막했다. 포항시는 참전자와 주민 의견을 수렴해 전적비명을 정하고, 전적비에는 전공기와 참전부대 및 지휘관 명단을 새겼다.1950년 6월 25일 새뱍, 북한군은 38도선 전역에 걸쳐 기습남침을 감행하여 3일 만에 서울을 함락하고 파죽지세로 남하하여 40여일 만에 우리의 최후 방어선인 낙동강 전선을 위협하기에 이르렸다.이에 우리 군은 최후 방어선을 지키기 위하여 가용한 모든 전력을 투입하였으며, 이 곳 기계 · 안강지구 역시.. 2024. 7. 28.
포항 현충시설 6.25참전유공자 명예선양비 · 무공수훈자 전공비 해도도시숲에는 6·25참전유공자 명예선양비, 형산강도하작전 호국영웅 고 연제근 상사 특공결사대상, 무공수훈자 전공비, 형산강 최후의 방어선 워커라인 표지석 등 이 한 곳에 나란히 세워져 이다.포항 6.25참전유공자 명예선양비1950년 6월 25일 공산군의 불법남침으로 인한 자유수호 전쟁에 참전하여 백척간두 위기에 처한 조국을 지키고 겨례를 구한 위국혈류의 숭고한 호국정신을 기리고 44일간의 포항지구전투(안강 기계 형산강도하작전에 참전하여 전사한 2,301위)에서 지역 출신의 호국영웅을 포함 3,234명의 호국·희생정신을 현양하고 전후세대 청소년들에 대한 국가관, 애국심 확립과 국가안보의 당위성을 숭상하고 역사의 교훈으로 삼아 이름 석자를 새겨 6.25전쟁 60주년을 상기하는 날인 2010년 6월 25일 .. 2024. 7. 22.
형산강도하작전의 호국영웅 故 연제근상사 특공결사대상 6,25 한국전쟁 초기에 회생의 격전지였던 포항전투에서 육군 3사단 22연대 1대대 소속 분대장 연제근은 1950년 9월 17일 형산강도하작전의 가장 위협적 장애물인 적의 기관총 진지를 격파하기 위해 13명의 특동대를 결정하였다. 수류탄을 몸에 달고 헤엄으로 형산강을 건너눈 중 9명은 적탄에 쓰러졌으나 어깨 관통상을 입은 연제근 상사와 대원 3명이 기어이 육탄 산화로 임무를 완수함에 포항 수복의 길이 더 순탄이 열리고, 마침내 여기서 북진의 발판이 마련되었다. 역사의 숱한 애환을 품어 유구히 흐르는 형산강은 늘 그날의 특공대원들을 잊지 않으려니 비록 늦었지만 그들의 순국 60주년을 맞은 2010년 9월 17일  52만 포항시민이 그 푸른 넋들을  모시고 멸사봉공 정신을 기리기 위하여 삼가 이 조상(彫像).. 2024. 7. 22.
형산강 6.25 한국전쟁 최후의 방어선 워커라인 낙동강 방어선의 동쪽 끝 형산강에서 벌어진 6.25 한국전쟁 포항지구전투는 44일간 (1950.8.11~9.23) 2,301명이 전사한 혈전이었다. 이 곳 형산강은 최후의 방어선으로 형산강 도하작전을 통하여 포항 탈환은 물론 북진 추격에 교두보를 구축한 역사적 현장으로서 당시 혈산강이라 불렸던 여기에 포항시는 2009년 9월 19일 작은 돌 하나를 세웠다. 6·25전쟁에서 ‘낙동강방어선’이란 국토의 90%를 북한군에게 빼앗긴 국군과 유엔군이 부산을 지키기 위해 1950년 8월 초~ 9월 중순까지 최후의 결전을 벌였던 방어선을말한다. 낙동강 방어선은‘부산교두보(Pusan Perimeter)’ 또는 ‘워커라인(Walker Line)’ 이라고 부른다. 당시 미 제8군사령관 워커장군의 낙동강방어선은 남해안의 마.. 2024. 7. 22.
육군3사관학교 호국상 육군3사관학교 호국상 호국간성의 요람 육군3사관학교 충성관 앞에는 완전무장을 한 병사가 왼손에는 소총을 오른손에는 빨간 횃불을 들고 서 있는 호국상이 세워져 있다. 호국상 정면 아래에는 '우리의 푸른 기상 온 누리에 떨치고저 충성벌의 맑은 정기 호국의 깊은 뜻을 알알이 새기노라;"라고 새겨져 있다. 호국상은 1974년 12월 21일 건립되었으며, 당시 학교장은 제3대 육장군 소장이었다.육군 정예장교 요람인 육군3사관학교는 2024년 현재 창설 56주년을 맞이하였다. 학교 창설 당시 우리나라는 조국 근대화에 매진하여 비약적인 발전을 하던 시기였으나, 북한은 우리의 발전을 방해하기 위해 1968년 1·21 청와대 기습과 美 푸에블로호 납치, 울진·삼척 무장공비 침투 등의 무력 도발을 자행하는 등 심각한 국가.. 2024. 7. 18.
경주 충혼탑 · 625전쟁 월남전참전 명예선양비 · 한국전쟁 민간희생자 위령탑 신라시대 때 화랑들의 훈련장으로 쓰일 만큼 역사가 오래된 숲 황성공원 안에는 경주예술의 전당, 시민도서관, 씨름장, 국궁장, 공설운동장, 김유신 장군 기마상, 박목월 시비, 향가공원 등이 있으며 공원 주위는 온통 숲으로 덮여있다. 황성공원 내에는 또한 충혼탑과  625전쟁 월남전참전 명예선양비 그리고 한국전쟁 민간인희생자 위령탑이 세워져 있다.  경주 충혼탑6·25전쟁 기간 경주 시민은 고향을 지키기 위해 북한군 제12사단의 침략에 맨주먹으로 맞섰으며, 많은 젊은이들이 1950년 6월 25일 남침 이후 3년간의 전쟁 동안 아군의 후퇴 및 방어, 반격 및 북진, 38선 인근의 고지쟁탈전, 공비 토벌작전 등에서 조국을 지키다 전사 또는 부상을 당하였다.  경주시 충혼탑은 6‧25 전쟁기간에 전사한 경주 출신.. 2024. 7. 9.
영천 현충시설 화북 애국지사 추모공원 황보근 · 조병진 · 홍종현 · 황보선 · 이진영 · 조병화 · 조재복 애국지사 추모비  북영천 IC 를 나와 35번 국도를 따라 오리장림으로 가는 길 오산마을 우측 도로변에는 지역 출신 애국지사들의 추모비가 세워져 있는 화북 애국지사 추모공원이 있다. 추모공원에는 황보근 · 조병진 · 홍종현 · 황보선 · 이진영 · 조병화 · 조재복 애국지사 추모비가 세워져 있다. 국가보훈처 지정 현충시설이다.이 비는 항일 의병부대인 산남의진(山南義陣)에서 활약한 황보근(1882 〜1963) 지사, 영천읍 장날 등에서 독립만세운동을 주동한 조병진(1891 〜1961) · 홍종현(1890〜1977) · 조재복(1897〜1952) 지사,비밀결사인 구화회 및 적우동맹에서 학생 항일운동을 전개한 황보선(1908〜1982) 지.. 2024. 7. 5.
인천상륙작전 UN군 상륙지점 녹색해안 인천 월미도 인천 월미도 유람선 선착장입구에 들어서면 우측에 세워져 있는 인천상륙작전 상륙지점중 하나인 녹색해안(Green beach)를 알리는 기념비를 볼 수 있다. ​그러나 이곳이 실제 상륙이 이루어졌던 지점은 아니다. 월미도는 이후 매립이 진행됨으로서 실제 상륙지점에서 해안쪽 직선거리인 이 지점에 기념비를 세운 것이다. 11950년 6.25전쟁이 초기 국군과 UN군은 북한군의 기습공격과 엄청난 전투력에 밀려 낙동강 전선까지 후퇴률 거듭했다. 이때 맥아더 장군은 북한군의 주력을 견제하면서, 북한군의 후방을 강타하는 내용의 인천상륙작전올 딘행했다 인천은 서울로 잡근할 수 있는 최단거리 항구였고 북한군의 보급선을 차단할 수 있는 요충지였다. 또한 수도 서울을 탈환함으로써 적에게 심리적 타격을 가 할 수 있는 이점이 .. 2024. 7.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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